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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stitut Schopenhauer de Paris  Sciences humaines et sociales

    파리 쇼펜하우어 인문사회과학 연구소

 

 

- 외국어 교육의 진실과 거짓   
   
        초등교육에서 대학교육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외국어 교육의 중요성과 그 필요성은 누구나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의 외국어 교육의 현실은 위기의 상황을 지나 참으로 암담하고 웃지 못할 상황임을 말해 주고 있다.
특히, 외국어 중, 같은 동양언어가 아닌영어, 불어, 독일어 등의 서양언어의 교육은 더욱 더 심각하며, 아예 그 교육목적 자체가 혼돈과 착각의 늪에 빠져 있음을  살필 수 있다. 이러한 한국의 외국어 교육의 현실,  즉 서양언어의 대표적인 예로서의 영어학습의 심각한 어려움은 어디서 기인하는 것이며, 나아가 외국어 교육의 진정한 교육목적과 교육방법은 어디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를 본 논의의 쟁점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누구나 한 번쯤은 학생시절에 경험하였듯이 외국어, 특히 영어회화를 유창하게 하는 주의 사람을 보면 무척이나 부럽고, 시샘을 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서양외국어, 즉 영어에 대한 집착은 결론적으로 영어에 대한 환상에서 기인된다 하겠다. 과연 영어가 영국, 미국, 서양인의 언어가 아니고, 어디 아프리카 원주민의 토착언어라 가정할 때 이러한 환상적 집착이 여전히 가능할 것인가 ? 이러한 질문에, 명백히 우리는 그렇지 않음을 인정하게 된다(영어의 필요성을 백분 인정한다 하여도). 따라서, 문제는 영어 언어자체의 우수성과 그 매력에 있는 것이 아니고,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 즉 서양인, 서양사회서양문화에 대한 우리 한국인의 환상적 집착에서 기인됨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주지하듯이 한국은 다른 동양국가와(일본을 제외한) 마찬가지로 근대, 현대로의 역사적 전환점에서, 일본의 포함한 선진 서양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특히나, 일제 식민지 이 후에는 자의든 타의든 서양문화, 즉 미국문화의 지배적 삶 속에서 수 세대를 살아왔고, 지금 역시 그 삶의 연장선 속에 살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라 하겠다.
이러한 서양, 미국 식민문화하에서 결국 이 땅의 토착민들은  빈곤의 삶의 해결책으로서 지배자의 언어를 동경해 마지 않게 되었으며, 이에 따른 서양 외국어, 즉 영어의 필요성은 더욱 더 가중되게 되었고, 사회전반에 걸쳐 영어에 대한 환상적 집착을 보여주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 한국의 외국어 교육은 자연이 맹목적이고 무분별한 영어교육으로 치 닫았고, 또한 당연한 결과로서 중등 및 대학입시에서 영어가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음을 물론이고, 각종 국가고시 및 취업시험에서 최고의 중요과목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렇게 영어에 대한 동경과 그 필요성은 한국사회 전반에 영어 만능주의의 행태를 낳게 하였으며, 영어능력, 특히 영어 회화능력은 한 개인의 학업능력과 지적능력결국에는  인간자체의 전반적 능력평가의 기준으로까지 자리잡게 되었던 것이다.
이제 영어는, 인간생각이나 학문의 표현수단으로서의 언어가 아닌, 인생자체, 인간 삶의 목적이 되었으며, 무슨 내용을 어떻게 표현하냐가 아닌, 아무 내용이나 얼마나 영어로 잘 표현하냐, 못하냐가 중요한 사실로 받아 들이게 된 것이다.
이러한 한국의 외국어 교육의 파행은 한국교육 전반에 걸친 파행으로 귀착하게 된다.
교육의 수단과 방법이 교육의 그 내용과 목적에 우선하게 되므로써, 오늘날 한국교육의 이러한 파행성은 예견된 결과였으며, 마침내 사회전반에 걸쳐  부작용의 결과를 보여주게 된다.
중등, 대학교육은 물론, 초등교육에서까지 학부모의 맹목적 영어 교육열은 그 정도를 넘어서게 되고, 초등학생 자녀의 영어교육을 위한 미국, 영국 또는 가까이  필리핀 등의 영어권 국가로의 조기유학의 행태를 보여주게 된다. 이로 인하여, 급기야는 남북분열이 아닌 가족분열이 일어나고, 기러기 아빠군을 형성하기까지 하게 된다. 또한, , 중등, 대학교육에서의 영어교육은 각종 사교육의 주범으로 원어민 영어 개인과외 및 각양각색의 영어학원의 출현을 불러오게 되었으며, 그리고 수 많은 각가지 검증되지 않은 서적과 디지탈 교재들이 시중에 범람하게 된다. 이렇게 한국의 중등교육은 대학입시 영어 전문학원으로 대체되게 되고, 한국의 대학교육은 영어 취업 준비반으로 전락하게 된다. 한국의 국가교육은 이렇게 영어로 시작해서 영어로 끝나게 되며, 한국의 학생, 젊은이의 인생 역시 영어로 시작해서 영어로 끝나는, 오로지 영어뿐인 영어인생이 되고 만 것이다.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는 한국의 외국어 교육은 이렇게 헤어날 수 없는 혼돈과 착각의 늪에 깊이 안착하게 된다.
 
    한편, 이러한 파행적 한국의 외국어 교육현실은 외국어 교육방법의 효율성, 즉 그 타당성과 가능성에서 근원적 문제점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외국어 교육방법의 타당성과 가능성의 문제는 결국 한국인으로서 외국어, 즉 영어의 언어벽을 넘을 수 있냐 없냐의 문제로써, 실질적으로는 영어의 언어벽 극복이 어느 정도의 영어능력을 의미하냐로 해석될 수 있다.
과연, 한국인으로서 영어의 언어벽을 넘을 수 있을까 ?
한국어를 포함하는 동양언어는 서양언어와 그 구조에서부터 각기의 낱말에 이르기까지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래서, 우리 한국인이 같은 동양언어, 예를 들면 일본어를 배울 때와 영어를 배울 때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한국어와 일본어는 언어구조 그리고 많은 낱말에서 아주 유사성을 보여주며, 이러한 이유에서 많은 한국 사람들은 일본어를 쉽사리 배우고, 구사하게 된다.
길지 않은 어는 일정 기간동안 일본어 문법과 회화를 익히고  배운 후, 좀 더 많은 단어와 문장을 학습하게 되면 일본어 회화는 물론 어느 정도 수준의 일본어 서적을 읽고 이해하게 됨으로써 일본어의 언어벽, 즉 모국인이 아닌 외국인으로서 일본어의 언어벽을 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 일본 현지에서 일본인과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데 거의 불편이 없으며, 또한 전문적 용어를 필요로 하는 토론과 논쟁에서도 그 토론과 논쟁의 내용에 정통하고 문제가 없으면 일본어 언어구사에서 비롯되는 불편함과 장애는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한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국어가 일본어가 아닌 이유로 일본 지방사투리나 어려운 농담, 어린이들이 쓰는 말또는 일본 일반인이 잘 사용하지 않는 은어들에서는 일본어의 이해와 구사에 문제가 있으며특히나 수준 있는 일본어 작문에는 여전히 어려움과 불편함을 갖게 되는 것이다.(이것이 바로 일반적으로, 외국인으로서, 동양인이든 서양인이든, 갖게 되는 외국어 언어벽 극복한계의 그 정도와 수준이라 정의할 수 있다. 따라서, 외국인이 외국어의 언어벽을 극복하였다 함은 이러한 한계 내에서 외국어를 이해하고 구사함을 의미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의 일본어 언어벽은, 한국인이 초등학교 저 학년쯤 일찍 일본 현지에 이민가 살면서 일본어 언어를 습득하게 되면은 충분히완전하게 극복할 수 있으며, 일본어가 외국어가 아닌 모국어라고   있는 정도가 되는 것이다.
반면에, 영어의 경우는 일본어와는 달리 한국인이 겪게 되는 외국어 언어벽은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여주게 된다.
영어의 언어벽은 같은 서양언어를 사용하는 서양인 즉 불란서,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인 등에게는 우리가 일본어를 배울 때와 같은 양상을 갖게 된다.(특히, 불어, 스페인어, 이탈리아 간에는 아주 유사성이 많아 외국어 학습이 무척이나 수월하며, 많은 서양 외국인들이 서너개의 외국어를 유창하게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인 것이다.) 그러나, 동양언어를 사용하는 우리 한국인은 영어를 배우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며, 영어에 대한 언어벽 극복은 무척이나 요원한 문제로 남게 되는 것이다.
이 경우 일본어의 경우와는 판이하게 다른 양상을 보이게 된다.
먼저한국인이 초등학교  저 학년쯤에 일찍 영어 현지에 가서 이민가 살게 되면일본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영어의 언어벽은 충분히 극복되고, 결국은 영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게 된다. 하지만, , 고등학교를 지나  대학생, 또는 성인이 되어서현지에 도착해 하는 영어학습은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무척이나 어렵고, 결국 한국인이 일본어의 경우처럼 외국인으로서의 영어의 언어벽을 넘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하겠다.
실제로, 한국에서 영문과를 나와 미국이나 영국으로 유학을 와 석, 박사 논문을 쓰는 유학생의 경우를 살펴보면 이러한 영어의 언어벽의 심각함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미국, 영국으로 유학가는 유학생의 경우,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영문과를 나와, 몇 달 영어 회화학원을 다니면서 유학준비를 한 후, 현지에 도착하여 꿈 많은 유학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처음 미국영국 땅을 밟으면서는 그렇게 영어의 어려움을 실감하지 못한다. 간단한 영어 회화는 한국서도 학교와 영어학원에서 외국인과도 제법 좀 해 보았고, 영어공부 역시 중,고 시절부터 한 두해 해본 것도 아닌지라, 제 나름대로 자신감도 있고 하기 때문이다. 이제 영어의 본토에 왔으니, 1, 2년 후, 길어야 3, 4년이면 영어의 언어벽을 넘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된다. 유학 갔다 온 선배님이나 교수님들의 영어실력만큼이나 나도 이제는 영어를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때부터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은 점차 더욱 더 크게 된다. 수업시간의 외국 교수님들의 수업내용은 둘째치고, 한국에서는 그래도 조금 알아들었던 영어도, 막무가내로 강의해 대는 달변의 교수님들의 영어에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무엇이 진담이고 농담인지, 농담을 하고 있는지 화를 내고 있는지 조차 통 구분이 안되기 십상이다.
그러니, 수업시간에 필기는커녕 외국인 학우들의 노트 빌리기가 바쁜 형편이며, 더군다나 빌린 노트의 글씨는 알아보기가 무척이나 힘드니, 참으로 웃지 못할 비참한 심정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실망의 연속 후에, 그래도 이해하기 벅찬 수업들이지만 열심히 수업을 듣고, 학교와 도서관을 오가며, 또는 개인 영어과외도 해 보며, 수업시간에 배운 것들을 외국인 친구 노트 빌려 복사해 달달 외어서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통과하게 되고, 드디어는 석사박사 논문도 쓰기 시작하게 된다.
이제, 영어 언어벽을 단 기간 내에 넘겠다는 처음의 야무진 생각은 씻은 듯 사라지고, 학문을 공부하는 것이 아닌, 오로지 학위를 무사히 마치고 빨리 한국에 돌아가야 하겠다는 현실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도,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가운데 5년 정도 지나게 되면 본인의 영어실력은 어는 듯 향상되고 그 어려웠던 교수님의 강의내용이 어는 정도 들리게 되며, 수업시간에도 어렵지 않은 질문과 답변을 하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학생들의 적극적인 토론과 참여를 요하는 세미나같은 수업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 모양 조용해야 되고, 수업 진행내용을 파악을 못해 당황스럽기는 처음이나 다를 바가 업다 하겠다. 어쨌든, 이렇게 어느 정도 유학기간이 지나게 되면 이제 큰 무리없이 일상생활하면서, 시장보는 일이나 관공서 등 주위에서 큰 불편없이 영어를 하며 지낼 수 있게 되며, 드디어 TV의 뉴스도 어는 정도 무리없이 듣고 이해하게 되니, 이제사 이 곳 외국세상 돌아가는, 내 사는 주위 세상모습을 제대로 살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국을 떠난지 정말로 오래만에 벙어리 냉가슴 심정이 아닌, 아니 심봉사가 눈을 뜨는 심정이라 할 것이다. 그러면, 이제 그렇게도 진저리 나던 영어의 언어벽(외국인으로서의 영어 언어벽)은 사라지는 것이란 말인가 ?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영어의 언어벽은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 일상생활의 영어회화는 큰 문제없이 구사하고 TV 뉴스는 이해할 수 있지만 어려운 영어회화나 토론은 이해와 참여가 어려우며, TV 뉴스 외에 내용이 조금 복잡하거나 말 많은 TV프로, 특히 코메디 프로는 이해하기가 여전히 무척이나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한국 유학생의 외국인으로서의 영어 언어벽 극복의 가능성 여부문제는 결국 불가능성의 문제가 되고 마는 것이다.
사실, 한국인의 외국인으로서의 영어 언어벽 극복의 불가능성의 현실은 현지에서 유학의 경험인 있는 사람은 누구나 경험하고, 내심 솔직히 인정하는 명백한 사실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영어 언어벽 문제는 유학생들의 마지막 석, 박사 논문작성 과정에서 여실이 나타나며, 확인할  있게 된다.
한국에서 석, 박사를 하게 되면 한국인으로서 한국어로 논문작성을 하게 되고, 당연히 한국어의 논문교정은 받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인이 5, 10년을 현지에서 유학생활 후 최종적으로 영어로의 논문작성은 열이면 열, 백이면 백 주위의 원어민에게 영어교정을 필요로 하며, 실제로 논문작성시 내용교정이 아닌 언어교정의 영어교정을 원어민에게 받지 않는 한국인 유학생은 한명도 없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인 것이다. 이러한 논문 작성시 영어교정은 단순한 교정이 아닌 한 두달씩 걸리는 많은 시간을 요하는 것이며, 심지어는 보수를 지불하고 교정을 보아주는 원어민 전문가에게 위탁하기까지 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군다나, 이러한 원어민 교정 전문가가 이해하고 교정할 수 있게끔 대충의 영어의 논문작성을 위해서, 영문과 출신의 그래도 실력있는 같은 한국 유학생에게 초벌교정을 부탁을 하는 경우도 또한 종종 볼 수 있는 사실인 것이다. 영어를 전문으로 공부한다고   있는 미국, 영국에서의 유학생의 영어수준과 실력이 이러할 때 한국인의 외국인으로서의 영어 언어벽 극복의 불가능성은 이렇게 명백하게 확인되는 것이다.
 
    결국, 한국인으로서 영어의 언어벽이 이렇게 심각할 때, 한국의 영어교육의 혼돈과 착각의 파행적 현실은 이러한 영어 언어벽 극복 불가능성의 사실의 왜곡에서 기인되는 것이며, 이렇게 잘못 된 영어에 대한 이해가 영어교육의 비 효율성, 급기야는 오늘날의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물불가리지 않는 무목적의 영어교육을 불러오고 있는 근원적 문제로 확인되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현 외국어 교육의 위기상황 해결의 진지한 노력은, 우선적으로 한국인의 외국인으로서의 영어 언어벽 극복의 불가능성의 사실을 인정함에 있다 하겠다. 그리고, 이러한 영어벽의 어려움을 직시하고, 차 후 초, 중등, 대학교육에서 가능한 영어 학습수준을 정확히 파악, 조정함으로써, 문제해결의 효율적 외국어 교육정책에 접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한국의 현 외국어, 영어교육의 문제해결은 최 일선의 영어교사들이  담당자라 할 수 있으며 그들의 영어능력, 수준정도가 또한 문제해결의 핵심 키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영어교사 중 최고의 실력자라 할 수 있는 영어교사는 대학 영문과 영어교수들인데, 이들의 영어실력은 현지 미국, 영국등에서의 5, 10년의 유학생활을 한 석, 박사 출신들의 영어실력이며, 이들의 영어실력은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외국인으로서의 영어 언어벽을 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원어민 영어교사가 아닌 일반 한국의 영어교사는 영어를 학생들에게 가리키는데 있어 근원적으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영어교사의 영어능력, 수준 문제는 영어학습의 본질적 문제로써 결코, 쉽게 해결할 수 없는 것이며, 미국영국 현지에 일정기간 영어연수를 보냄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차원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따라서, 영어교육의 최 일선 담당자라 할 수 있는 영어교사의 영어수준이 이러할 때, 오늘날 한국의 외국어 교육의 해결방안은 참으로 요원한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반면, 언급하였듯이 영어학습은 궁극적으로 한 개인의 교육목적, 또는 국가교육의 최종적 교육목적이 아닌 교육수단, 방법이고, 결국에는 본질적으로 인간의 생각이나 학문의 표현수단임이 명백한 까닭에, 여기에서 또한 그 해결 가능성을 찾을 수 있게 되며결국 현 한국의 외국어 교육의 적절한 문제 해결방안을 모색하여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영어학습이 이렇게 최종적 교육목적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영어를 완벽하게 할 필요성은 배제되는 것이며, 따라서 실제로 사회 여러, 각기 각 분야에서 요구되는 실제 영어학습자 수요를  정도에 맞게 끔만 충족시켜 주면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영어를 배우는 모든 학생들에게 영어의 언어벽을 넘어,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것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사회 필요수요에 따른 그리고 학생 개인능력에 따른 다양화하고 차별화된 영어수준의 영어교육을 실행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다양화, 차별화의 영어교육은결국 대 다수의 영어교사의 영어수준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또한 한국인으로서의 영어 언어벽의 극복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한국 영어교육의 현 조건과 환경에 맞는 실속있는 최선책의 영어교육을 가능케 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다양화, 차별화의 영어교육은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간단히 세 등급의 영어 학습반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사회에서 꼭 필요로 하는, 소수의 학생들이 원어민 수준의 완벽한 영어구사하기 위한 영어 학습반을 구성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소수학생을 위한 완벽한 영어학습은 언급하였듯이, 결국 조기 영어학습으로, 초등학교 저 학년을 대상으로 하여야 하며, 원어민 교사에 의한 특별반이 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가능하면 다수의 원어민 학생과 같이 수업이 이루어지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것 같으면 한국이 아닌, 외국 현지에서 정부차원에서 이 특별반을 운영하여야 할 것이다. 이렇게, 선별된 조기 학습자는 3, 4 년 정도 후에는 영어를 충분히 모국어와 같이 말하게 되며, 마침내 영어와 한국어 두 언어를 모국어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학습결과는, 외국 현지의 유학생들 중 초등학교 저 학년 자녀를  경우에서 확인된 사실이며, 역으로 한국에서 외국인 유학생의 어린 자녀들이 한국어를 모국어처럼 더 잘 말하는 경우에 비교할  있다 하겠다.
한편, 이렇게 영어의 언어벽을 뛰어넘는 완벽한 영어학습을 위한 선별된 영어 학습반과는 달리, 학교 졸업 후 사회생활에서 여전히 요구되는 일반 상식으로서의 영어를 위한 영어 학습반이 또한 준비되어야 할 것이다. 이 영어 학습반은 원어민 교사가 아닌 현 영어교사의 지도하에 충분히 학습, 교육될 수 있으며, 고급의 영어회화나 이해가 아닌, 일반적인 간단한 회화나 문법, 독해를 주 목적으로 하게 된다. 이는 현재 한국의 중, 고등학교에서 행하여지는 영어교육에 해당된다 할 수 있으며, 다른 것이 있다면 이 영어 학습반의 학습목적은 불가능한 영어의 언어벽을 뛰어넘는 영어학습이 아닌 상식적인 영어의 구사와 이해를 그 교육목적으로 하고 있음이며, 영어교사는 학생들에게 이러한 교육목적을 사전에 충분히 인지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이 영어 상식반 학생들은 혼돈과 착각의 무목적의 허황된 영어교육에서 일찌감치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서의 영어 학습반은 고도의 전문 영어독해를 목적으로 하는 영어 학습반이다.
영어독해는 영어회화와는 달리 한국인이 나름대로 충분히 영어벽을 극복할 수 있는 전문분야이다.
이는 과거의 독해 위주의 한국의 영어교육에서 확인된 사실이며, 또한 실제로 주위에서 유명대학 학생 중에 영어회화는 형편없어도 탁월한 영어독해 실력을 가진 학생을 자주 볼 수 있었던 경우가 이 경우에 해당된다 하겠다
오히려 이러한 영어독해는, 오늘날 글로벌 시대의 각 기업체에서 필요로 하는 각종 서류나 책자의 이해와 취급, 그리고 각종 정보확보를 위해서 영어회화 못지 않게 요구되고 있으며, 기업체뿐이 아닌 사회 각 분야에서 요구되는 영어원서와 영어 전문지의 판독을 위해서는 필수 불가결한 사항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영어독해 학습반은 영어 상식반 학생 중 선별하여 우수한 학생으로 구성되어야 할 것이며, 중등교육 이 후에, 오히려 대학교육에서 더욱 더 전문화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영어독해 학습반은 사실 한국인의 언어성향에 맞는 학습반으로, 이러한 한국인의 영어독해 소질을 살려 영어회화 보다 오히려 더 발전시켜야 할 영어 전문분야이며, 영어회화만 어는 정도 겸비되면 외국 현지에서 타 외국인과 비교하여 충분히 한국인의 자질과 능력을 각기 전 분야에서 발휘할 수 있게끔 하여 주는 훌륭한 교육수단과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아마도 이 경우에는, 영어독해 만이 영어공부의 전부이고 영어회화는 생소하다시피 했던 옜 시절에, 경기고와 서울대를 졸업하고 현 유엔 사무 총장 직을 수행하고 있는 반기문 사무총장을 대표적인 그 예로 꼽을 수 있을 것인데, 조기 영어학습이 아닌 오로지 영어독해로써 불가능한 영어 언어벽을 넘은 몇 안되는 훌륭한 한국인의 경우라 하겠다.)
 
    살펴본 위의 세가지 경우의 영어 학습반은 한 예에 지나지 않으며, 교육정책 전문가나 일선 영어교사의 좀 더 실질적인 교육정책, 그리고 세밀한 주의와 지도가 필요로 할 것이다. 이렇게 전문적이고 세밀한 관심과 함께, 한국의 영어교육이 교육목적과 교육방법이 전도되지 않는 범위에서 다양화, 차별화될 한국의 외국어 교육은 한국인의 영어 언어벽 극복의 불가능성에도 불구하고 훌륭히 그 목적달성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 개인 또는 한 국가의 교육목적은 쉽게 정의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교육목적은 각 학생 개인, 또는 그 부모, 그리고 각 시대, 각 사회와 국가에 따라 그 목적을 달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육목적은 그 것이 개인의 안녕과 평화이든 혹은 한 국가의 발전과 번영이든 그 교육방법과 수단을 필요하게 된다. 이러한 교육방법과 수단은 결국 교육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중간과정이며 최종적 목적이 될 수 없음이 확연하다 하겠다. 그렇지 않고, 교육방법과 수단이 교육목적을 대신할 때 그 교육은 방향을 잃고 표류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의 생각이나 사상을 표현하는 언어를 잘 구사함은 훌륭한 교육방법과 수단을 소유함을 의미하지, 결코 훌륭한 교육목적을 달성하였음을 의미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한국의 현 외국어교육, 영어교육이 혼돈과 착각의 무목적의 교육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개개인이, 특히 정부차원에서, 영어자체를 교육목적으로 하는 환상적 집착에서 깨어나오게 함이 무엇보다도 급선무의 교육정책이라 하겠다. 그리고, 진지하게 영어 언어벽 극복의 불가능성을 인정하고, 영어학습을 사회의 요구에, 그리고 학생의 능력과 수준에 맞게끔 다양화, 차별화하는 길만이 훌륭한 외국어 교육목적에 이르는 지름길임을 하루 속히 깨닫고, 현 사회에서 더욱 더 요구되는 한국의 외국어 교육발전을 위해서 우리 모두가 진지한 노력을 경주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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