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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stitut Schopenhauer de Paris  Sciences humaines et sociales

    파리 쇼펜하우어 인문사회과학 연구소

 

  

- 쇼펜하우어의 철학세계

        

     18세기 말, 19세기 전반의 독일 관념철학자라 할 수 있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플라톤과 칸트의 철학을 계승하고 있다. 하지만, 쇼펜하우어는 플라톤과 칸트 철학을 뛰어넘는 천부의 철학자로서, 난해한 형이상학적 대상에 대하여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해석으로써 그의 철학세계를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객관적인 논리적 해석과 설명을 우선함으로써,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철학자 자신의 믿음과 확신만으로 일관하는 애매모호한 일반 강단철학과 구별될 수 있었으며, 또한 그의 철학적 전제, 즉 쇼펜하우어 개인의 철학적 믿음과 확신은, 역으로 독자에게 그의 철학에 대한 무한한 믿음과 확신을 부여케 할 수 있었던 것이라 하겠다. 따라서, 쇼펜하우어의 철학 전제는 일개 개인의 믿음과 확신이 아닌, 세계의 근간을 통찰하는 천재의 통찰력의 결과로서의 철학적 대 귀결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우리는 이렇게 쇼펜하우어 철학에서, 세계 철학사에 있어 전무후무하게도(쇼펜하우어 자신의 그의 저서에서 밝혔듯이), 세계의 비밀을 푸는 열쇠를 발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쇼펜하우어 철학은 세계의 원동력이자 세계를 주지하는 <<대의지>>의 존재를 전제로 하는 그의 철학세계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세계를 대의지 자체의 세계라 할 수 있는 의지의 세계와 우리가 살고 있는 현 세계, 즉 표상의 세계의 두 세계로 구분하게 된다.

반면에, 이러한 존재의 대의지는 표상의 세계의 구현을 위한 <<객관화>> <<개별화>>의 두 과정을 필요로 하게 된다. 의지의 세계에서 대의지는 이렇게 객관화와 개별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인과율에 따라 시간과 공간을 매체로 표상의 세계를 구현하게 된다.

한편, 쇼펜하우어는 이러한 우리들의 현 세계, 표상의 세계는 각 개인의 표상의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하였다. 다시 말하면, 각 개인이 죽게 되면 세계는 존재는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의 의미는 세계가 존재하지 않고, 세계가 빈 공간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존재하는 실제 세계는 인간이 인식한 세계와는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겠다.

, 세계는 대의지의에 의해서 창조되고 구현된 세계이며, 이러한 세계는 언급하였듯이 인과율에 의한 그리고 시간과 공간을 매체로 한 세계인 것이다. 그런데, 이성과 더불어 이에 따르는 인식능력을 소유하게 된 인간은 원래의 이러한 인간존재 이전의 세계를 인간의 인식능력에 맞추어, 다시 말하면 인간의 원활한 인식능력을 위하여 인간 스스로가 변형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변형된 세계는 실제로 존재하는 세계가 아닌, 인간의 두뇌 속에만 존재하는 세계인 것이다. 따라서, 인간 각 개인이 죽게 되면 세계의 존재는 즉 인간 두뇌속의 변형된 세계는 사라지는 것이며, 반면에 대의지가 창조하고 시간과 공간 속에 구현된 실제 세계는 여전히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이 실제 세계와 다른 인간두뇌 속의 변형된 세계가 바로 쇼펜하우어 철학에서의 표상의 세계가 되는 것이다(1). 

 

     그러나, 표상의 세계와는 달리 의지의 세계는 표상의 세계 존재를 위한 원동력의 세계로서, 대의지 자체의 세계라 할 수 있다. 여기서는 표상의 세계의 논리, 즉 인과율은 적용되지 않게 된다. 따라서, 표상의 세계에 속한 인간의 인식능력으로는 의지의 세계를 이해한다는 것 불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이해할 수 있는 모든 것은 표상의 세계에 국한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쇼펜하우어는 인간에게 이러한 의지의 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 인식의 주체가 인식의 대상이 되었을 때 의지의 세계, 그리고 대의지의 인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며, 인간 자신이 자신의 의지를 인식하였을 때, 인간은 표상의 세계에서 의지의 세계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 자신이 의지의 세계에 들어섬으로써 자신이 속했던 표상의 세계는 사라지게 되고, 인간 자신은 더 이상 표상의 세계의 논리, 인과율의 지배를 받지 않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인간이 의지의 세계로 들어서는 순간, 인간의 인식능력은 더 이상 인간육체의 종속적 기능이 아닌,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순수인식 자체로 전환되게 되는 것이며, 그리고 여기서 전환된 순수인식은 인간에게 의지의 세계의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반면에, 의지의 세계에 대한 인식은 우선적으로 대의지의 초기 객관화된 대상(의지의 세계에서의 초기 변형체(mutation))인 이데아(플라톤의 이데아)의 인식부터 시작된다. 이러한 플라톤의 이데아를 우선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예술가들인데, 예술가들은 자신의 인식이 순수관조의 상태에 들어감으로써, 그리고 그들의 인식이 일시적으로 순수인식 자체로 전환됨으로써 이데아를 인식하게 된다.

나아가, 예술의 세계에서의 순수인식이 지속되고 심화될 때 인간은 해탈의 세계, Nirvana의 세계에 들어서게 된다. 이 해탈의 세계에서 인간의 모든 고통은 소멸되는데, 이는 인간의 인식이 장시적으로 순수인식으로 전환됨으로써 인간의 고통의 근원이 되는 인과율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순수인식 자체로서의 인간은 결국, 의지의 세계를 인식하게  되는 것이며, 또한 대의지를 인식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이 현 세계를 벗어나 표상의 세계에서 의지의 세계로 들어설 때, 인간에게는 예술의 세계가 시작되는 것이며, 또한 이러한 예술의 세계가 장시적으로 지속되고 심화될 때 인간은 해탈의 세계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결국, 이러한 해탈의 세계에서 고통이 존재치 않는 영원한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되는 것이며, 이는 인간의 인식능력이 순수인식 자체로 전환됨으로써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이 해탈의 세계가 바로 순수 의미에서의 의지의 세계가 되는 것이다.

마침내, 대의지가 객관화와 개별화의 과정을 통하여 창조한 표상의 세계에서의 인간은 그가 존재하는 표상의 세계를 떠나 대의지의 세계인 의지의 세계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한편, 쇼펜하우어 철학에서 표상의 세계의 구현을 위한 대의지의 객관화, 개별화의 과정은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대의지는 표상의 세계를 구현하기 위해서 먼저 자신의 객관화를 필요로 하게 된다. 이러한 객관화는 대의지의 절대적 자유에 속한 문제이며, 결국 이유 없는 대의지의 변화의 결과라 하겠다. 또한, 이러한 객관화의 과정은 의지의 세계에서의 변화의 과정이기 때문에 우리들의 현 세계에서 통용되는 논리인 인과율의 논리, 즉 이성적 설명이 불가능하게 된다.

대의지의 객관화는 이렇게 논리적, 이성적 설명이 불가능한 자신의 변화, 즉 자신의 변형(mutation)을 통하여 진행되며, 결국 플란톤의 이데아에 해당하는 객관화의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이러한 플라톤의 이데아는 그 형태를 갖지 않은 형상이라 할 수 있으며, 또한 각각의 이데아는 그 들 자신에 해당하는 사물을 구현함을 그 목적으로 하게 된다

따라서, 플라톤의 이데아는 각 사물들의 영원한 형상에 해당되며, 그리고 이러한 이데아의 대상인 각 사물들은 그들만의 각 종을 중심으로 생성되는 것이라 하겠다.

 

     이데아 객관화에 이어서 대의지의 개별화 과정이 전개된다

이 개별화 과정은 인과율이 지배하는 우리들의 현 세계인 표상의 세계에서의 변화이기 때문에, 충분히 논리적, 이성적 설명이 가능한 과정이라 하겠다.

우선적으로, 표상의 세계에서 사물의 구현에 중요한 역할은 하는 것은 자연법칙이라 할 수 있다. 이 자연법칙은 이데아와 개별화 과정의 결과물인 사물 간에 다리 역할을 하게 된다.

따라서, 이데아가 겪게 되는 표상의 세계에서의 첫 접촉은 자연법칙과의 만남이며, 이 첫 접촉에서 자연법칙은 이데아를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인과율에 연결시키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연결 후,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인과율은 인간의 인식을 통하여 재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여기서 인과율은 물질을 규정하고 제한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데, 이러한 인과율의 역할로 인하여 이데아의 표상의 세계에서의 구현이 주어진 물질을 통하여 가능하게 되는 것이며, 마찬가지로 그 물질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물질은 그 존재의 지속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며, 결국 이데아에 의한 표상의 세계에서의 사물의 구현이 인과율에 의하여 시간과 공간을 매체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일차적 사물의 구현후의 개별화의 과정으로서의 다음 단계는 물질의 다원화의 단계이며, 이는 무기물질에서 유기물질까지 포함하여 행하여지게 된다.

한 물질의 다원화라 함은 자연법칙이 해당 이데아와 더불어 표상의 세계 언제, 어느 곳에든지 적용됨을 의미한다 하겠다. 결국, 이데아는 각기 다른 시간과 공간하에서, 필요시 되고 없어서는 안 될 자연법칙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며, 그리고 이 자연법칙과 결합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이데아의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인과율 하에서의 자연법칙과의 연계는 상이한 상황에서도 계속되는 것이며, 결국 한 물질의 다원화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마침내, 의지의 세계에서의 대의지는 객관화, 그리고 개별화의 과정을 끝내고 표상의 세계, 우리들이 살고 있는 현 세계를 구현하게 되는 것이며, 여기에는 무생물인 돌에서 생물의 최고봉인 인간까지 만물이 상존하게 되는 것이다.

 

     대의지의 존재를 전제로, 의지의 세계로부터 표상의 세계로까지, 그의 철저한 우주, 자연적 철학세계를 구축한 쇼펜하우어는, 나아가 여기에 그의 인간적 철학세계를, 즉 인간의 고뇌문제를 첨가하게 된다.

, 인간의 고뇌, 고통의 근본 원인은 대의지의 한 변형체라 할 수 인간이 대의지의 특성인 끝없는 욕망,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소유하는데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반면에, 이러한 인간의 고뇌, 고통의 또 다른 근본 원인은 인간이 그 고통을 인식함에 있는 것이며, 이는 곧 인간 인식능력의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따라서 인간과는 달리 인식능력이 아주 없거나 미약한 생명체는 고통을 전혀 느끼지 않거나, 또는 적게 느끼면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족될 수 없는 욕망의 소유자이자 이를 인식하지 않을 수 없는 인간은 영원히 고통스러울 수뿐이 없는 것이며, 인생 자체가 고뇌라는 운명 속에 살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즉, 이러한 무한한 고뇌의 근원적 원인을 갖고 태어난 인간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고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결국, 인간의 욕망과 인간의 인식능력 이 양자에서 그 해결방법을 찾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유일한 인간 고뇌의 해결방법은 사실 인간의 욕망이 아닌 인간의 인식능력에서 구할 수뿐이 없게 된다. 왜냐하면, 대의지의 특성으로서의 인간의 끝없는 욕망은 우리들의 현 세계, 표상의 세계를 넘어 의지의 세계의 존재로서, 제거될 수 없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한편, 이렇게 인간의 인식능력을 대상으로 하는 인간고뇌의 해결방법은 인식능력을 파괴하고 제거하는데 있는 것이 아닌, 인간의 인식능력을 더욱 최대한 상승케 함으로써 전적으로 가능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고통을 못 느끼게, 인식능력을 파괴하여 식물인간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인간의 인식능력을 발전, 고양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 인식능력을 발전, 고양은, 언급하였듯이 인간 인식의 순수인식 자체로의 전환을 추구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렇게, 인간이 예술의 세계, 해탈의 세계로 들어서게 되면 인간의 인식이 순수인식 자체로 전환함으로써, 더 이상 채워지지 않는 끝없는 인간욕망의 족쇄를 벗어나 원인과 결과의 인과율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 즉, 고뇌와 고통이 존재치 않는 의지의 세계에서 영원한 평온을 찾게 되는 것이다.

마침내, 인간은 인간의 탄생과 함께 짊어지는 인간의 인식능력에 따르는 인간 고뇌의 굴레를, 결국 인간 자신의 인식능력, 순수인식에 의하여 벗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전지전능한 대의지의 존재를 전제로 하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세계는 먼저 세계를 대의지 자체의 세계인 의지의 세계와 우리들의 현 세계인 표상의 세계로 구분하게 된다. 그리고, 의지의 세계에서의 대의지는 표상의 세계를 창세하기 위해서 객관화 과정과 개별화 과정을 겪게 되며, 마침내 자신의 변형(mutation)으로 인식의 최고봉인 인간을 창조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쇼펜하우어의 철학세계는 인간의 고뇌문제에 안착하게 되는데, 인간의 욕망을 인간고뇌의 근원적 원인으로, 그리고 인간의 인식을 이 고뇌의 해결방법으로 제시하게 된다.

, 표상의 세계에서의 인간이 자기 인식의 발전과 함께, 예술의 세계을 거쳐 해탈의 세계 즉, 고통과 고뇌가 존재치 않는 출발지인 의지의 세계로 돌아옴으로써, 인간의 고뇌는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대의지는 이렇게 우리 인간에게 두 세계를 넘나드는 가교역할을 할 수 있는 능력인 인식능력을 부여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인식능력을 소유한 인간은 두 세계를 넘나들면서 인간자신을 예술의 세계, 해탈의 세계로 인도하게 되는 것이며, 결국 대의지 자신은 객관화, 개별화를 거쳐 자신이 창조한 인간을 통하여, 즉 자신을 비추어 주는 거울을 통하여 자신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쇼펜하우어 철학세계는 두 세계의 가교역할을 담당하면서, 또한 대의지 자신을 비추어 주는 거울인 되어버린 인간의 순수인식을 인간이 추구할 최고의 가치대상으로 제시하고 있다 하겠다. 여기서 인간은 수많은 이데아의 하찮은 한 결과물이지만, 그리고 우주, 자연의 미미한 한 구성요소에 지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없어서는 안 될 한 점, 화룡점정(畵龍點睛)의 의미를 보여주게 되는 것이다.(이러한 화룡첨정의 쇼펜하우어의

세계를 우리는 다음과 같이 이미지화 할 수 있다.)

 

                      

 

 

 

 

« 참고문헌»

- A. Schopenhauer, Le monde comme volonté et comme représentation, trad. A. Burdeau, PUF, "Quadrige", 2006, Paris

- 쇼펜하우어(곽복록 역),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을서문화사, 1992, 서울

 





(1) : 이러한 의미에서, 일반적, 상식적인 시간과 공간의 개념, 즉 우리가 일상적으로 느끼고 경험하는 시간과 공간은 원칙적으로 인간이 창조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의 두뇌에서 행하여지는 인간의 사고, 인식작용은 이러한 창조개념의 시간과 공간의 존재 없이는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혹은, 이러한 인위적으로 창조된 시간과 공간의 존재 이후, 인간의 사고, 인식작용은 그 발전과정을 겪었다 하겠다). 따라서, 이러한 인간이 창조한 창조개념으로서의 시간과 공간은 실질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결국 이러한 시간과 공간은 인간의 머리 밖에 존재하는 것이 아닌, 인간의 머리 속에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창조한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이해가 이러할 때, 이러한 시간과 공간은, 결국 우리가 현존하는 자연세계를 포함하여 전 우주에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인간이 창조한 시간과 공간은 그 실체를 달리하여 존재하게 되는데, 이러한 창조된 시간과 공간의 실체는 태초부터 존재하였으며, 현재도 또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실체의 존재를 인간이 인간의 사고, 인식작용의 필요성에 따라 지금의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시간과 공간으로 인위적으로 대체하게 된 것이다. 한편, 이러한 인위적 시간과 공간의 실체는, 결국 우주, 자연의 모든 형성물(무생물, 생물을 모두 포함하는) 그 자체의 존재이며, 그리고 이러한 존재의 운동현상에서 비롯된다 할 수 있다.

, 우주공간과 그 진공상태까지 포함하는 전 우주, 자연의 구성물들의 전후좌우, 그리고 동서남북이 구별없는 존재상태가 인간이 창조한 공간의 실체이며, 또한 이러한 공간의 실체인 구성물들이 운동함으로써 변화의 상태가 계속될 때, 이러한 구성물들의 상태가 달라짐을 인간은 인위적으로 시간의 개념으로 해석, 이해하게 된 것이다.

반면에, 이러한 시간과 공간의 실체에서 인위적 시간과 공간개념으로의 대체는, 우주와 자연의 « 통일성 »의 제반 법칙을 관측하는데, 또한 과학적 실험을 하는데 있어, 전혀 문제점을 야기하지 않게 되고, 오히려 그 과학적 제반원칙을 이해하고 파악하는데 편리하고 명확한 과학적 수단으로서의 대체역할을 담당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결국, 우주, 자연의 구성물인 시간과 공간의 실체가 « 통일성 »의 지배를 받는 가운데, 기존의 시간과 공간의 실체를 인위적인 창조개념의 시간과 공간으로 그 명칭만 바꾼 결과에서 기인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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